외모, 퍼포먼스, 음악 등 가수를 평가하는 척도에는 다양한 조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가창력’입니다.
하지만, 가창력이라는 재능으로 얻은 인기는
그 재능이 유지돼야 지속될 수 있는 법인데요.

오늘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바로 그 엄청난 인기때문에, 목소리를 잃어버린 가수 top3를 알아보겠습니다.

<김경호>

1994년 <마지막 기도>라는 앨범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 김경호는 시원한 고음과 파괴력 있는 목소리로
일부 록 매니아 리스너들 사이에선 확실한 인상을 남겼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실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예당 엔터테인먼트 이적 직후 발매한 2집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히트메이커 이경섭이 작곡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은 호소력 짙은 멜로디에 김경호의 엄청난 성량과 무내 매너가 더해지며
무려 88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죠 이후 발매한 3집, 4집 역시 수십 만 장을 팔아치우면서
록 매니아를 넘어 일반 대중들까지 즐겨 듣는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한 김경호는 비록 무명가수 신세는 탈출했지만 지옥 같은 스케줄을 견뎌야 했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3옥타브 솔을 넘나드는 초고음 샤우팅이 반복되는 노래들이 많은데,
여기에 고음 부분에 목을 긁는 듯한 스크래치 스킬을 넣는 빈도까지 늘어나며 성대가 혹사되는 상황이 지속됐고,
히트곡으로 유명세를 얻자 소속사에서는 행사, 공연 스케줄을 과도하게 잡는 바람에 5년간 무려 1000회에 달하는 행사와 공연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수 년간 반복된 타이트한 공연 스케줄 때문에 2000년에는 목소리가 생명인 가수에게 치명적인 성대결절 판정까지 받았지만

소속사와의 계약 때문에 활동을 중단할 수 없었던 김경호.
예당만 떠나면 혹사 문제는 해결될것 같았지만, 예당을 떠난 후에도 문제는 반복됐습니다.
예당을 떠난 김경호는 급기야 자신이 직접 소속사를 차려 6집을 발매했지만, 앨범은 성공하지 못했고
여기에 공연 연습을 하던 도중 목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내원했다 두 번째 성대결절을 진단 받았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소속사 예당의 횡포로 TV 프로그램 출연이 금지된 상황에서 해외 활동을 고려하다
로드매니저가 해외 홍보 명목으로 유흥비에 5억 원을 탕진하며 빚까지 얻게 됐고, 이를 갚기 위해 각종 행사를 뛰다가 이번에는 세 번째 성대결절을 진단 받게 되었죠. 혹독한 스케줄과 세번의 성대결절로 심신이 지친 김경호는 새로운 소속사를 만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2003년 핑클 를 리메이크한 7집 앨범을 발표,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긴머리도 자르고 예능도 출연하며 이미지도 확 바꿔봤지만, ‘자존심 버린 록커’,’변절자’ 등 록 매니아들의 혹평을 받는가 하면 자신에게 실망한 록커 후배 박완규와 멱살까지 잡고 싸울 만큼 힘들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무리 튼튼한 성대라 해도 10년 가까이 혹사 당했다면 성할 리 없겠죠.
그렇게 약해진 성대와 저하된 가창력으로 한동안 평단의 외면과 혹평을 면치 못하던 김경호는 2012년 <나는 가수다>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을때까지 슬럼프를 겪었다고 하네요

<조성모>

부드러운 미성이 돋보이는 감성 발라드 으로 가요계에 데뷔, 최초의 ‘얼굴 없는 가수’ 마케팅으로 데뷔 직후부터 초미의 관심을 받은 조성모는
이후 변진섭, 신승훈의 뒤를 잇는 발라드의 황태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중반 화려한 아이돌 그룹이 지배하던 가요계에서 존재감 있는 인기를 누린바 있습니다
일명 공기반 소리반을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미성이 조성모의 트레이드마크로 통하며 특유의 목소리를 모창하는 방송인들까지 등장할 만큼 조성모의 인기에 그의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죠.
목관리만 잘했다면 미성을 내는 선배 이승철, 신승훈처럼 수십년간 롱런할 수 있었을텐데, 조성모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워낙 어린나이에 체계적인 발성 연습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데뷔한 터라 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창법을 지속하며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았던 목 상태가 망가진 게 원인이었는데요
조성모의 성대가 혹사 당하기 시작한 건 그 유명한 김광수의 GM뮤직 소속으로 전국의 있는 행사 없는 행사를 말 그대로 모조리 뛰며 스케줄을 뛰면서부터였습니다. 전성기 시절 조성모는 1집부터 3집까지 약 4년이라는 시간동안 단 하루도 쉰적없이 하루 최대 14개의 스케줄을 소화해야했고
심지어 하루에 비행기를 네번이나 갈아타고 스케줄을 소화한 적도 있다고 하죠

년 연속 더블 밀리언 셀러, 최단 기간 1000만 장 돌파 가수 등
화려한 수식어 만큼이나 정산이라도 많이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
데뷔 직후부터 대박 행진을 이어온 조성모가 집안 빚을 다 갚은 시점이 3집 발매 이후라고 하니
수익 분배 사정도 알 만 합니다 목은 목대로 상하고, 과도한 스케줄로 건강까지 상할 위기에 있던 조성모는 4집 발매 후
GM뮤직과 계약이 끝나자마자 새 소속사로 이적하여 5집을 준비했지만
발매 이틀 전에 김광수가 조성모 히트곡을 모은 베스트 앨범을 선수치듯 내놓으면서 5집 발매는 무기한 연기되었는데요
전 소속사 사장의 견제로 음반 발매는 미뤄지고, 상한 성대 때문에 창법까지 바꾸면서
점차 우리가 알던 미성의 목소리와 멀어지게 된 조성모.
소속사 계약 만료 이후 충분한 휴식을 가진 뒤 복귀했다면 성대 건강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조성모는 2003년 5집 <피아노>를 통해 확 바뀐 창법으로 컴백, 히트 작곡가 김형석이 만든 노래답게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전의 곱고 갸날픈 미성이 사라진 힘을 주고 지르는 샤우팅 창법은 호불호가 크게 갈렸습니다
이후에도 자신이 원활하게 소화할 수 있는 창법을 찾지 못한 것인지,
성대결절 증상이 계속돼 목에 무리가 많이 간 탓인지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수시로 창법을 바꿨고
2005년 발매한 6집 이후부터는 밀리언셀러 명성이 무색하게도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했는데요
군 전역 이후 발표한 충격적인 댄스곡 <바람필래>를 기점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그의 가창력마저도 계속해서 나빠지는 목 상태와 함께 쇠퇴하기 시작,

조성모는 결국 <히든싱어>를 통해,
전성기 시절의, 자신의 히트곡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원조 가수 최초 2라운드 탈락이라는 안타까운 기록을 세워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현재는 가성을 많이 사용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노래를 소화해내고 있다고 하네요.

<김진호>

퍼포먼스 중심의 댄스 음악과 힙합 장르가 가요계를 평정하기에 앞선 2000년대 중반
이른바 ‘소몰이 창법’이 대세로 떠오르며 미디엄템포 발라드의 전성기가 시작됐는데요
그 중심에는 소몰이 창법의 전성기를 이끈 1인자로 평가받는 3인조 남성 보컬그룹 SG워너비,
그 중에서도 SG워너비 곡 특유의 스타일을 배가 시킨 김진호가 있습니다
실제로 SG워너비하면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중후한 보컬이 매력적인 김진호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SG워너비 노래에서 차지하는 김진호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었는데요,
하지만 김진호를 비롯 SG워너비라는 그룹에게 화려한 인기를 안겨준 소몰이 창법 스타일은 오히려 성대 건강에는 독이 되었습니다.

가수 목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선보일 수 있는 테크닉적인 발성이 아닌,
성대 자체를 쥐어 짜고 몰아 붙이면서 만들어내는 다소 과격한 발성 방법이었기 때문인데요,
거기다 앞선 조성모와 같은 소속사인 GM뮤직 소속으로서,
대표 김광수가 1집부터 초대박 난 SG워너비를 가만히 둘리도 만무했습니다
2004년 데뷔 직후부터 2006년까지 SG워너비는 지상파 방송 출연은 물론 전국 각지의 행사 공연,
거기다 거의 매주 콘서트까지 병행하며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행해야 했다는데요,
그룹 내 파트가 가장 많았던 김진호에게 특히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성대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음에도 타이트한 스케줄을 지속한 결과 결국 데뷔 3년차였던 2006년 성대결절 진단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SG워너비 멤버였던 故 채동하 역시 비슷한 시기에 성대결절을 겪었다고 하니 당시 SG워너비의 혹독한 스케줄이 조금 짐작이 가는데요,
그렇게 성대에 문제가 발생하며 전성기 1, 2집 시절 고수하던 창법을 지속할 수 없었던 김진호는 3집부터 서서히 목소리에 힘을 빼기 시작해 예전의 풍부한 소리 대신 가벼운 목소리로 바꿨고, 마치 부르짓는 듯한 소몰이 창법도 조금씩 줄여나가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아예 담백한 스타일로 변신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자신의 목소리로 돌아왔다고 하는 게 맞다는데요
애초에 김진호는 데뷔 전 지역 가요제에 입상했을 때도 조용하고 기교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발라드 곡을 부른 바 있고, 본인이 선호하던 음악 스타일 역시 소몰이보다는 잔잔한 발라드였기 때문이죠. 소몰이 창법이 포인트인 미디엄템포 스타일의 노래로 데뷔했다 대중의 반응이 뜨겁자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만들어 낸 목소리로 목을 혹사시킨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진호 본인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창법 변경이었지만, 대중에게는 소몰이 스타일이 익숙했는지 창법이 바뀐 이후 SG워너비 인기는 서서히 식어갔는데요.


실제로 2013년,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김진호는 “3년간 수입이 없었다”고 밝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김진호는 2015년 <히든싱어>에 출연, 모든 노래를 소몰이가 아닌 본인만의 담백한 창법으로 소화,
결국 2라운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는데요.
일각에서는 창법이 바뀐 것일 뿐 실력이 줄어들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의 음악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고 하네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옛말처럼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가수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건 숙명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사용하면 기능이 소실될 수 있는 성대를 사용하는 라이브 가수라면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 먼 과도한 스케줄 보다는 적당한 휴식과 활동을 병행해야 더욱 오래,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롱런 가수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