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폐쇄적인 조직을 꼽으라면 군대를 빼놓을 수 없죠. 남북대치라는 안보상의 이유로 그간 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정보 공개는 물론, 민간 참여도 철저히 배재돼 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 내부에서 발생한 불합리한 사건을 폭로하는 것은 자신의 신변과 사회적 위치, 평범한 일상까지 담보로 해야 할 만큼 쉽지 않다고 전해지는데요.

오늘 살펴볼 이들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은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한순간에 이등병이 된 군인 TOP3>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위 이지문 중위

1992년 3월 22일, 대한민국 제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며칠 앞두고 있던 어느 날 한 군인이 대국민 양심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정체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ROTC 29기로 백마부대에서 복무하던 24세의 이지문 중위였는데요,

기자회견 종료 직후 헌병대에 끌려갈 만큼 민감한 사안을 다루었던 그의 폭로는 다름 아닌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발생한 군대 내 부정행위에 관한 증언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비밀선거’가 민주국가 선거의 4대 원칙으로서 국민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로 여겨지지만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군내에서는 지휘관들이 부대원들을 상대로 특정 후보를 찍으라는 압박을 공공연히 일삼았다고 전해지는데요.

이지문 중위의 폭로에 따르면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당시, 집권 중이던 노태우 대통령의 지지율이 32%에 불과하다는 것에 위기감이 고조되자 군 수뇌부가 중, 소대장들에게 지시하여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을 뽑으라고 노골적인 정신교육을 하는가 하면 투표 감시, 심지어 투표 용지를 빼앗기도 했다고 합니다.

“소속 중대장이 투표지에서 기호 2, 3, 4번은 손으로 가리고 1번을 찍도록 했다” “기무사의 서신검열용 기계로 누구를 찍었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으니 알아서 잘 찍으라고 강요했다” 등 이지문 중위의 기자회견으로 밝혀진 부대 내 선거 부정행위는 충격적이었는데요.

일부 장병들이 투표 부정을 외부에 공개할까 우려해, 선거를 앞둔 2주 동안 전 사병들의 외출, 외박을 금지할 만큼 사건은 체계적으로 자행됐다고 합니다.

사병도, 간부도 아닌 장교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부대 내 불의를 참다 못해 폭로한 전무후무한 사건! 이후 이지문 중위는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근무지 이탈로 헌병대에 연행돼 구속되었다가 군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이등병’ 신분으로 파면, 강제 전역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원래 장교 특채로 삼성그룹 입사가 확정되어 있었지만 이 폭로로 인해 장교 신분이 사라져 입사가 취소되는 상태에까지 놓이게 됐는데요.

이후 긴 법정 다툼을 벌이다 무려 3년만에 파면은 취소됐으나 복귀 시한이 지났다며 파면 취소 후에도 삼성그룹으로의 복귀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만 눈 감았다면 제대 후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 입사를 앞두고 있던 스물 네살 청년의 용기있는 결정으로 군대 내에서 실시한 부재자투표는 14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바로 영외투표로 개선, 부정선거 시비를 차단하는 데 일조했는데요.

이후 그는 한국 내부고발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현재 ‘한국청렴운동본부’에서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2위 이동균 대위

영화 <1987>을 통해 요즘 세대들에게도 잘 알려진 80년대 군부독재 시대의 잔혹함!

학생, 직장인, 주부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민주화를 향한 염원을 담아 운동에 나서던 그때, 한 군인이 대한민국 군 역사에 길이 남을 ‘장교명예선언’을 발표하며 군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은 바 있습니다.

1989년 1월, 당시 육군 30사단에 소속돼 복무 중이던 이동균 대위가 그 주인공인데요.

이동균 대위는 김종대 중위를 비롯한 장교 4명과 함께 군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화를 촉구하는 명예선언문 낭독 기자회견에 참여, 서슬 퍼랬던 군사 정권 비판과 군의 정치개입에 대해 폭로했습니다.

통치자의 권위를 위해 국민 개개인의 자유가 묵살되던 시절, 쿠테타와 군사 반란에 대해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군인들의 명예선언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인생, 더 나아가 목숨까지 내건 용기있는 결단이었는데요.

당시 대한민국 국민이었다면 누구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내용들을 선언한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

군 수뇌부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고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지극히 당연한 선언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이들은 ‘군인복무규율’ 위반 혐의를 받아 체포 및 파면됐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파면에 불복하는 행정 소송을 냈지만, 2년 뒤인 1991년 대법원에서는 군에서 내린 처분이 정당하다는 취지의 확정 판결을 내리며 이등병으로 강등, 파면된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가 처한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요.

타당한 목소리를 냈으나 부당한 처분을 받으며 그렇게 잊혀 가던 두 사람은 이로부터 십여년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국무총리 직속 ‘민주화운동심의원회’의 지원을 받아 뒤늦게나마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어 2017년엔 이동균 대위가 ‘군 적폐청산위원회’에 파면 취소를 요구하는 민원을 내면서 마침내 선언문 낭독 이후 30년이 지나서야 파면 취소가 결정됐는데요.

하지만 국방부에서는 파면일로부터 정상적인 복무 만료일까지 미지급된 4개월분의 보수만 지급할 뿐 두 사람이 받은 정신적, 물질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군사 정권에 그 누구보다 용기있게 맞선 그들, 사건으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아직까지도 싸우는 중이라고 하네요.

1위 조주형 대령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전국이 들떠있던 2002년 3월, 공군 항공사업단 소속의 조주형 대령이 양심선언을 위해 기자회견을 제안하며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영관급 군인의 폭로로 큰 관심이 이어진 조주형 대령의 양심선언은 국방부에서 차세대 전투기에 특정 기종의 선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군수사업 관련 부정행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당시 조주형 대령은 F-15 전투기를 FX 기종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군 시험평가단 부단장을 맡았다가 미군과 군 수뇌부의 외압을 받았다고 합니다.

국방부에서 전화나 사람을 통해 미국 보잉사가 제작한 ‘F-15K’가 아니면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등 조주형 대령의 폭로를 기점으로 한국형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려는 공군의 희망과 어긋난, 한미간 불평등한 관계가 수면 위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는데요.

폭로 직후 국방부 직할 수사정보기관인 국군기무사령부의 조사가 시작되며 조주형 대령은 곧바로 구속됐고, 그에겐 군사 기밀 유출과 뇌물수수 혐의가 씌여졌습니다.

군대 내 있어서는 안 될 평가과정에서의 외압을 폭로한 용감한 행위에 군사 기밀 유출 혐의라니… 조대령은 최후 진술에서 무기 도입과정에서 불거진 한미간 불평등한 관계를 조목조목 지적했고, 변호인은 군사기밀 유출 혐의는 기밀의 가치가 있을 때만 적용된다는 판례를 제시하며 조주형 대령의 무죄를 주장했는데요.

여러 언론 매체와 여론 역시 국방부를 향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지만 조주형 대령은 결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야 했고 이는 군인사법에 의거하여 ‘임용 결격 사유’에 해당하므로 불명예 제대를 의미,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더욱이 조대령 구속 이후 국방부의 FX 사업은 그의 증언대로 강행되면서 조주형 대령이 제기한 의혹을 그대로 입증하는 씁쓸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는데요.

외압과 조작 의혹을 밝힌 용감한 양심선언자가 파렴치한 공군 장교로 낙인 찍힌 채 구금된 이 사건은 훗날 2016년 <1급 기밀>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죠.

조주형 대령은 출소 후, 공군본부가 있는 대전에서 새집증후군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 유해성 물질을 대체하는 무공해 접착제를 개발하는 등 생명을 살리는 사업을 진행중이라고 하네요.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나쁜 상황이라는데요. 실제로 집단 내 부당한 관습을 알리는 양심 선언이나 내부 비리를 폭로했다가 명예훼손, 기밀 누설 등으로 역풍을 맞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당장은 잔잔한 호수에 파장을 일으키는 조약돌 취급을 받는 이들은, 멀리 보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데요.

용기있는 내부고발자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물론, 이들을 보호하는 법적 제도 역시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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