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긴장과 불안의 관계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와 북한. 중간중간 화해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남북 관계는 대체로 경직되고 위험하다고 평가됩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분단 국가라는 특수성 탓에 연예계에서도 북한 관련 이슈가 터진 적이 여러 번이라는데요, 오늘은 북한에 끌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뻔한 여배우 TOP3를 알아보겠습니다.

<최은희>

1978년, 50~60년대 대한민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미모의 여배우가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지며 전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실종 배우는 1947년 데뷔 이래 뛰어난 연기력과 외모로 주목받았던 최은희인데요, 최은희는 당대 최고의 톱스타로 평가받는 김지미, 엄앵란 등과 자웅을 겨룰 만큼 뜨거운 인기를 구가한 배우로, 그녀의 실종 소식은 온국민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겼죠.

실종 사실을 보도한 당시 기사 내용에 따르면 최은희는 1978년 1월, 홍콩으로 홀로 출국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순식간에 증발한 인기 여배우에 대해 언론은 단순 실종이 아닌 북한 밀입국 같은 다양한 추측성 의혹들을 제기했으나 수사는 답보 상태였고, 한동안 최은희의 소식은 감감무소식이었다는데요. 그렇게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최은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실종 후 수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최은희가 밝힌 지난 시간은 충격 그 자체였는데요, 1978년 그녀가 홍콩으로 출국한 이유는 작품 후원 미팅. 일정을 마치면 한국으로 곧바로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홍콩 현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유도 모른 채 마카오로 끌려간 최은희는 그곳에서 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 이와중에 그녀의 눈 앞에 등장한 건 선내에 걸린 김일성의 초상화였다고 하는데요. 알고 보니 홍콩에서 최은희를 납치한 건 북한공작원들이었고, 이들이 향하던 곳도 북한이었던 것이죠.

한국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뒤로한 채 북한으로 끌려간 이상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불 보듯 뻔했고,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최은희가 북한에 닿자마자 만난 사람은 김일성이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북한 현지의 반응은 극진하기 그지 없었다는데요. 김일성이 몸소 마중을 나와 반기는가 하면, 고위 수뇌부들의 환대를 받는 등 우려와 달리 부족함 없는 생활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이 시기 북한으로 끌려간 한국 유명인은 또 있었는데, 바로 최은희의 전남편이었던 영화감독 신상옥입니다. 갑자기 실종된 최은희를 찾으러 그녀의 마지막 발길이 닿은 홍콩을 찾았다가 똑같이 납북, 최은희와 달리 승용차를 탈취해서 도망가려다 끝내 잡히고 수용소에서 모진 고X까지 당한 뒤에야 북한에서 최은희와 재회할 수 있었다는데요.

수십년을 함께 지내온 동반자를 무려 북한에서 만난 두 사람. 그렇게 이례적인 재회를 한 최은희와 신상옥에게 내려진 임무는 영화 제작이었습니다.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한국에서 쌓아온 각종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탈출기> <돌아오지 않는 밀사> 등 완성도 높은 작품을 제작해 북한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고, 해외영화제에까지 출품해 상을 타기도 했죠.

그렇게 몇 년에 걸친 북한 생활을 통해 김정일의 신임을 얻은 두 사람은 영화 촬영을 핑계로 오스트리아로 출국,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면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수년 전에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인기 여배우와 유명 영화감독이 그동안 북한에 체류 중이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경악했는데요,

하지만 남한으로 돌아가면 북한에서 언제 공작원을 급파해 자신들을 암살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한국행이 아닌 미국으로의 망명을 결정한 두 사람. 그렇게 미국에 거주하며 영화 제작에 몰두하던 신상옥과 최은희는 한참이 지난 1999년에서야 귀국해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후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를 제작하기도 한 신상옥 최은희 부부. 공개된 영화속 최은희는 “‘옷 다른 거 입으시오’하면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하는 꼭두각시처럼 생활했다” 라며 북한에 납치된 이후 생활에 대해 상세히 전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납북, 망명 등으로 영화보다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여배우 최은희는 2018년 16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정양>

잊을만 하면 뉴스나 신문을 통해 언급되는 ‘NLL’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서해, 동해 접경 지점에 그어진 북방한계선을 의미하죠. 서로의 영해를 침범하지 않고자 합의를 통해 설정한 구분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북 사이의 분쟁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요. 평범한 일반인들은 근처에도 갈 수 없고, 가서도 안 되는 NLL. 

그런데 연예인 중에는 이 NLL에 접근했다가 큰 사고를 당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2000년대 초반,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인기를 끌었던 탤런트 겸 가수 정양인데요. 사건이 벌어진 건 2008년, 당시 정양은 친구들과 인천 영종도에서 보트를 타고 서해 바다쪽으로 향하며 항해를 즐기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변덕이 심한 해상 날씨 탓에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고, 정양 일행이 탄 보트는 길을 잃기 시작했다는데요. 기상 악화로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점 출발지와 멀어진 정양. 장장 2시간가량 바다를 표류하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북한과 남한을 경계짓는 NLL 경계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NLL 근처에만 접근해도 민감하게 대응할 법한 상황에서 보트를 탄 일반인이 경계선을 넘어왔으니, 북한 측의 반응은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정양이 탄 보트를 향해 경고 사격까지 이어졌다는데요. 다행히 총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있다가는 보트가 점차 북한 해안으로 향하며 북한군에 억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죠. 

그렇게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서 우리 해경에 의해 보트가 구조돼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던 정양. 조사 결과 정양과 친구들은 항해 신고를 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시험 항해를 나갔다가 NLL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눈총을 샀는데요. 정양을 향한 비난이 커진 건 이들이 비단 정치적으로 갈등이 초래되는 장소에 간 이유만은 아닙니다.

그간 조금만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면  NLL 인근에서 수많은 분쟁이 발생해 사람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소식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을 텐데,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아주 기본적인 사항도 숙지하지 못한 모습은 지적을 받기 충분했죠. 경찰에서 월북 시도 등에 대해 조사를 받고 무사히 귀가한 정양.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양은 “낯선 해변에 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북한 사람이었다”고 밝혀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정양과 정양의 친구들이 우리나라 해양 경비청에 의해 무사히 발견되지 않았다면 경고 사격 이후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NLL 인근에서 발생한 숱한 사망 사고들을 감안하면 이들의 북한 해역 침범을 단순 실수로 치부하기에는 상황의 심각성이 결코 가볍진 않은 것 같네요. 

<윤정희>

앞서 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사례로도 알 수 있는 북한 지도층의 남다른 영화 사랑. 1960년대 데뷔해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원로 여배우 윤정희 역시 북한 김씨 일가의 영화를 향한 열정 탓에 위험천만한 납북 위험에 놓인 바 있다는데요.

동년배 연기자들 중에서도 단연 폭넓은 연기력으로 괄목할 만한 커리어를 쌓아가던 윤정희는 1977년, 스위스의 한 재벌가의 초청으로 연주회를 열게 된 피아니스트이자 남편인 백건우를 따라 스위스로 향했습니다.

해당 연주회는 두 사람의 결혼식에 주례를 담당했던 故 이응노 화백의 아내 박인경이 극진히 부탁한 건으로, 거절하기가 죄송스러워 승낙했다고 하는데요. 바쁜 스케줄상 거절하고 싶었던 연주회. 미안함을 무릅 쓰고도 거절해야 했습니다.

왠지 모를 수상한 분위기는 스위스에 도착하자마자 감지됐는데요. 윤정희와 백건우를 마중나온 비서라는 인물이 갑자기 연주회가 스위스가 아닌 유고슬라비아, 현재의 크로아티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비행기를 환승해야 한다고 전했고 이에 당황한 두 사람은 “비자가 없이 공산국가에 갈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비서는 “담당자가 입국 수속 등 필요한 조치를 모두 해두었다”며 유고슬라비아행 비행기 탑승을 재촉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듯 스위스 취리히에 내리지 않고 유고슬라비아행 비행기에 탑승한 두 사람. 자신들을 인도한 여비서는 이미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고, 윤정희는 그때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던 순간 ‘조선민항’이라고 쓰여진 북한 항공기가 대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인데요. 가뜩이나 공산 국가에 가는 게 석연치 않았는데, 북한 민항기까지 보다니…

왠지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윤정희는 이어 묘하게 촌스러운 행색을 한 웬 아시안 여성이 자신들을 지켜보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이상함의 연속인 상황에서 연주회를 요청한 스위스 재벌가 측은 마중도 나오지 않고 이동할 자가용도 준비해놓지 않은 상황에 신경이 극도로 곤두선 윤정희.

그러나 박인경의 지시대로 곧 택시에 올라탔고, 세 사람이 탄 택시는 얼마 못가 조용한 3층짜리 주택 앞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얼마 있다 연주회가 개최될 장소로 보기에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분위기에 수상함을 느낀 백건우는 윤정희와 딸을 택시에 남겨둔 채 내렸고, 집을 둘러보던 중 옆집 소녀에게 당초 전달받았던 집 주인의 이름 ‘아미크’의 집이 맞냐고 물었는데요.

그렇다는 소녀의 대답에 주택 안으로 들어선 백건우.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옆집 소녀의 등뒤로 한 아시안 남자가 등장했고, 백건우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가 북한공작원임을 감지, 곧바로 택시에 올라타 미국 영사관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운영 시간을 넘긴지라 영사관의 문은 닫혀있는 상태였고, 바로 옆에 위치한 도서관 역시 문을 막 닫으려는 찰나! 윤정희와 백건우 일행은 허겁지겁 도서관으로 뛰어들어가 납북 미수가 있었음을 토로, 당장 미국 관리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데요.

이들의 긴박한 상황을 전달받은 담당자는 윤정희 가족을 자신이 머무는 호텔로 안내했고 무사히 밤을 보낸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북한공작원들이 호텔로 들이닥쳐 또 한번 납북 위기에 놓인 두 사람은 다행히 때마침 호텔에 도착한 미국 영사 덕분에 위기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충격적인 스토리는 26년이 지나서야 북한이 백건우 부부 납치 공작을 시인한 외교문서가 발견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됐는데요. 납치 공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면밀하게 이끈 중심에는 박인경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당시 박인경은 아무런 조사를 받지 않았고 현재도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이응노 미술관의 명예관장을 맡아 활동하는 등 버젓이 한국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습니다.

그녀로부터 직접 피해를 입은 윤정희, 백건우 두 사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대체 배후가 무엇이기에 어떤 조치도 받지 않고 피해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쌓여 있는 북한의 실상. 이렇게 북한 측으로부터 실제 위협을 받은 여배우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니 새삼 북한 체제의 위협이 무섭고, 공포스럽게 느껴지네요.